이글루스 로그인


책을 읽는 방법(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최근 1년 간 '글쓰기'에 대한 책이 참 많이 나왔다. 바로 얼마 전에도 '글쓰기의 최소원칙'이라는 책이 나왔고, 또 그전에는 '치유하는 글쓰기'라든가 각자의 테마를 가진 책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었다. 이는 블로그를 비롯한 1인 미디어에서의 글쓰기를 비롯하여 과거에 비해서는 일반 대중이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고, 그것이 어떠한 다수의 힘으로써 작용하기 시작했음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누구나 말을 하지만 '글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는 누구나 언급하지는 않는다(물론 해당 서적들이 말하는 '글쓰기'와 관련한 다양한 관점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어떻게 해야 살찌우는 글읽기를 할 수 있는지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게 아닐까. 많이 읽어라, 다독을 해라, 읽어라, 읽어라, 강조하지만 '방법론'은 쉽게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취미 생활로, 공부로, 교양을 위해 나름대로 책을 읽어가면서도 위와 같은 그런 재촉에 많이 지쳐있었다. 빨리 많이 읽어야 한다, 는 주장들. 이 주장들이야말로 책을 읽는데 있어서 가장 독이 되는 것은 아닐까. 빨리 읽는다고 해서 이해력과 사고력을 다듬을 수 있을까. 나의 일천한 경험을 꺼내 살펴봐도 결코 그렇지 않다. 시사 잡지나 신문의 한 지면을 읽어도 그렇다. 단편적인 정보만 취득하고 넘어간다면 슬쩍 훝어보는 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존재한다. 그렇게 보고(읽은 것이 아닌) 넘어간 것은 쉽게 잊혀진다. 꼼꼼하게 읽어보고 깊이 고민을 해 보아야만 내 것이 되는 것이다. 길지 않은 기사도 그럴진데 소설이나 사상서, 전문 서적 등은 오죽할까. 그간 빨리, 많이 읽어라, 에 쫒겨 접했던 책이나 글들은 대부분 나에게 자산으로 남지 못했다. 때문에 두번, 세번, 혹은 그 이상 반복해서 읽어야 할 때도 많았다. 그런 이유로 한때는 내가 이해력이 '평균적인 수준'보다 현저하게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런 도중에 만나게 된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것 만큼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지독(遲讀)'을 말하고, 다시 읽으면서 책 속의 또다른 매력을 발견하고, 깊고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즐거움을 찾아가는 읽기, 그것이 슬로 리딩이었다. 저자인 히라노 게이치로를 비롯해서 프로 작가들 조차도 책을 느리게 읽고, 굳이 많은 책을, 빨리 읽을 필요가 없으며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언급에서는 일종의 전율마저 느꼈다. '읽어야 한다'는 초조감은 독서를 빈곤하게 만들 뿐이라는 구절에서는 구원받은 기분이었다. 내가 틀렸던 것이 아니었던 거다!

최근의 개인적인 읽기 방법을 조금 밝히자면 (취미용 서적, 만화 등을 제외하고, 공부용 서적, 잡지, 신문 등을 읽을 때) 반드시 연두색 색연필을 들고 주요 부분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데, 이 방법 자체가 처음에는 스스로 엄청난 부담과 거부감으로 다가왔었다. 어딜 감히 책에다 낙서를! 이라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냥 읽어나갔을 때는 언급했던 것처럼 이해도 더디고, 나중에 감상을 쓰거나 하면서 내용을 돌이켜봤을 때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독해력에 있어서도 표면만 살짝 훝고 간 수준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것은 너무도 절망스러웠기에 돌아설 길도 없고 해서 궁여지책으로 밑줄을 긋기 시작했는데, 이게 의외로 도움이 되더라는 거다. 이런 방법으로 책을 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히라노 게이치로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구조화하고 차트를 만들라고 권한다. 책상에 앉아 밑줄을 그으며 천천히 읽으라는 것이다. 동시에 슬로 리딩의 장점을 다수 언급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읽을 것인지를 설명하고, 여러 텍스트를 예로 들면서 슬로 리딩의 실천 방법을 차근차근 짚어준다.

이 책도 밑줄을 그어가면서 나름대로 천천히, 생각하면서 읽어가자 앞으로, 더, 어떤 식으로 읽어야 할 것인지.. 조금은 방향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당장 독해력이나 사고력이 엄청난 수준으로 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방법을 알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발견했고, 또 책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즐거움에 조금 더 다가갔다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고민했고, 답답했던 것이 그저 이해력 부족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익히지 못한 '읽기'가 원인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부터는 적극적으로 개선해나가면서 책을 깊이 읽어가면 되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고민했던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한다.

by 찬물月の夢 | 2009/01/13 20:56 | 필요한 건 우정! 노력! 승리!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digitalis.egloos.com/tb/481221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송화 at 2009/01/14 11:20
저도 최근에 책 읽을때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는데 그게 여러모로 도움이 되더라구요. 밑줄긋고 또 봐야겠다 싶어서 포스트잇으로 책을 떡칠하기도 해요ㅋ 이 책도 읽어봐야겠군요. 포스트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찬물月の夢 at 2009/01/14 19:55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밑줄이 의외로 도움이 되는 것을 저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냥 눈으로 읽을 때보다 이해력도 높아지는 것 같고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