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로그인


[Movie] 연가시(2012)

1. 독특한 소재, 그러나 재난 영화의 흔한 클리셰를 통한 안전한 연출.

일반적인 재난 영화는 아니다. 소재가 '변종 연가시'라는 기생충에 의한 대량 사망, 이로 인한 국가 재난 사태로의 발전, 이니까. 엄청난 자연 재해(쓰나미나 폭설, 지진 같은)도 아니고, 거대한 괴물(괴물?)의 등장도 아니고, 육식 곤충에 기생하는 기생충이 변종이 되어 그 숙주가 인간이 되었을 때 얼마나 엄청난 사태가 벌어지는가, 하는 측면에서의 재난이다. 따라서 '소재'만 놓고 보자면, 색다르고 독특하다.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재난' 류가 아니기에.

소재의 참신성이 좋아서일까, 연출은 흔히 볼 수 있는 재난 영화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재난 영화라면 아, 하고 떠오를 수 있는 장면 연출, 사건 전개, 감염자 혹은 피해자들이 놓여있는 상황과 긴박한 분위기의 조성, 음악 활용, 사망자가 증가하며 서서히 고조되는 위기감 등등. 연출 면에서는 상당히 안전한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편집이나 연출, 분위기를 초반부에 반복적으로 배치하며 '변종 연가시에 감염된 사람들의 대량 사망' 사태를 꽤나 확고하고, 설득력있게 관객들에게 이해시켰다는 점은 충분히 높이 살만한 미덕이다. 또한 혹여 이 영화가 과도하게 징그럽지는 않을까, 불쾌하지는 않을까, 하는 약간의 우려를 가지고 영화관에 들어간 사람들에게마저도 비교적 적은 수준의 혐오감을 주면서도, 상당히 강렬한 충격과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징그러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더라, 괜찮더라.' 라는 입소문을 탈 수도 있게끔하는 훌륭한 장점이었다. (칼슈레이님의 포스팅에서) 같은 재난 영화 장르의 다른 영화에 비해 상당히 적은 예산을 가지고도 이와 같은 효과를 냈다는 점은 분명 칭찬받을 측면이었다.

빠른 진행과 속도감있는 교차 편집(후반부, 재혁의 아내 경순이 수용소에서 정신을 잃고 생수통을 들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장면과 재혁이 윈다졸 암거래에 실패하고 암거래상이 변기에 흘려버린 윈다졸을 필사적으로 찾는 모습의 교차 편집은 상황의 절박함을 여실하게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수용소에 모인 감염자들이 밤에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무섭게 물을 찾아 질주하고, 또 결국 빠져서 사망하는 hazard 연출 등은 꽤 볼 만했고, 여름에 걸맞는 오락 영화의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2. 뻔한 스토리 전개,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제약회사의 음모와 무능하고, 화나는 정부의 행태.

변종 연가시로 인해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죽어나가고, 그것이 번져나가는 초반, 그리고 그 가운데 주식 투자로 약장수로 전락한 전직 교수인 아버지의 팍팍한 일상, 그 주식을 권한 동생의 변함없는 행태, 재혁이 현재 몸담고 있는 제약 회사의 예전 모습과 현재의 상황, 동생 재필이 또다시 주식 투자에 몸달아 정보를 찾으며 깔리는 복선 등. 사실 스토리 전개는 굉장히 뻔하고 흔하다. 연출에서의 안전한 클리셰 활용 만큼이나 익히 봐왔던 그것들이랄까.

여기에 (적지 않은 수의 관객들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제약회사의 음모가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감염자들을 보호하고, 약을 찾고, 사태 해결에 노력하지만, 결국 무능했으며,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보여주는 정부의 행태가 차츰 드러나면서 이 이야기는 사회성을 갖기 시작한다. 물론 그것이 현실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는 외국계 투자 회사(!)의 탐욕스러운 모습과 연구진 및 현 사장단의 '선량한 회사인 양 행세하다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국가에게조차도 거래를 제안하는' 그야말로 '아아니, 이 돌쳐맞을 놈드라아아!!!'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악랄한 행태 등이 너무나 잘 짜여져있어서 어찌보면 '정말 음모론'이다 싶은 뒷얘기지만 말이다. 알기 쉬운 선악구조, 그럴 법한 음모, 너무나 많이도 겪어온 정부의 무능. 그래도 조금쯤은 생각해볼 만한 구석이 있고, 그래도 공감이 가고, 그래서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였다고 본다.

3.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아버지의 가족을 구하기 위한 고군분투기.

극 초반 약장수로 전락한 재혁이 그 일상에 몸부림치는 가장, 아내 경순과 아이들에게 퉁명스러운 고된 가장이었던 그가, 가족이 감염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감염되었다, 는 상황에 부닥치면서 가족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어찌보면 초반과 중후반이 너무 다르다, 싶을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또 어찌보면 '가족' 소재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발달한 한국적 스토리의 전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네 삶이 그렇지 않은가. 부모 가족 형제자매에게 평소에는 살갑게 대하지 못하던 사이라고 하더라도 어려운 상황, 힘든 처지, 위기에 놓이게 되면 가장 먼저 찾고 위하고 걱정하며 보듬는게 한국의 가족의 모습이었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다시 퉁명스럽고 팍팍할지라도 그래도 가족을 구해야 하는 사람들이고 가장이고 남자가 김명민이 분한 재혁에게서 보였다. 그렇기에 설득력이 있었고, 공감이 갔다.

여기에 형사이며, 사건의 발단이 된 '조아제약'의 주식을 둘러싼 배경을 캐고 있던 동생 재필의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가족을 구하기 위한 가장의 스토리에 특효약(=윈다졸)을 구하기 위한(or 새로이 제조를 해서라도) 소시민의 작지만 큰 활약기로 발전하게 된다. 이 부분은 앞서는 뻔한 전개였지만 미리 충분한 복선이 되어 주었던 제약회사/재필/원래 화학자였던 재혁의 배경 등이 주효하게 작용하며 오히려 작위적이지 않은 진행이 되었다.

결국 재혁/재필/연주 등의 노력으로 제약회사의 음모도 물거품으로 사라졌고, 무능했던 정부도 마지막엔 도움을 주는 선량(?)한 국가로 변모(?)했고, 여러 회사들의 협력으로 감염자들을 구해내며 훈훈한(?) 마무리로 이어지는데... 역시 마지막에 와서 힘에 부쳤을까, 마지막 장면의 그것은 사족에 가까웠다고 본다. 다른 식의 결말도 충분히 가능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4. 김명민, 문정희, 김동완/그외 실력파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였던 캐스팅.

김명민에 대해서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개인적으로 연기로 처음 만나다시피 한 문정희의 연기가 정말 좋았다. 너무나 착하고, 우리 곁에 있을 것 같은 주변 아주머니의 모습. 감염이 되어 정신을 잃고 물을 들이키는 모습, 넋나간 표정,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모습 등. 현실감있고, 자연스러운, 훌륭한 연기였다.
김동완의 연기도 또한 나무랄데가 없었다. 매우 찌질하고, 구질구질하지만 행동력은 있는 형사의 모습을 참 잘 소화해냈다. 제스처나 대사 처리, 다른 배우들과의 연기합도 아주 좋았다고 본다.

또 여기서 국무총리 = 전국환/보건부장관 = 최정우/황박사 = 강신일 등. 실력파 배우들의 연기도 작품을 살려주는 좋은 요소였다. 덧붙이자면 재혁, 경순의 아이들이었던 예지, 준우의 연기도 매우 훌륭. 아, 이 아이들 정말 잘하더라 연기.

5. 결론

수작이라고 평하기엔 다소 미묘하지만, 충분히 재미있게 보고, 영화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주는, 여름에 걸맞는 시원한 영화라는 것. 김명민에게도 영화에서의 (몇몇 작품을 제외한) 흥행부진을 털어버릴 수 있는 대표작이 될 것으로 보이고, 김동완에게도 배우 김동완으로서의 인지도, 좋은 평판, 대표작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 일단 첫주차 출발이 좋은데, 스파이더맨, 배트맨에 끼인 2주차부터는 어떨런지.. 모르겠다.
부디 순탄하게, 차분하게, 꾸준히 잘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 관련 포스팅들

연가시 - "컨테이젼"인줄 알았는데 그냥 음모론 영화 (칼슈레이님)
연가시 관람(스포 있을 걸요?) (을파소님)
대한민국 영화 <연가시>에서 마이클 베이의 영화 <아마겟돈>을 보다(랄까요?) (검투사님)
[옥탑방영화] I 돈 care <연가시> (옥탑방연구소장님)
연가시, 묘한 현실감이 주는 무서움 (자그니님)
'연가시 (2012)' : 좋은 시도, 멋진 결과물 (SilverRuin님)
[누설포함]연가시-재난 보다는 사회비판 영화. (고산연변님)

by 찬물月の夢 | 2012/07/08 18:27 | 딴짓의 결과물 | 트랙백(1) | 덧글(4)

트랙백 주소 : http://digitalis.egloos.com/tb/565548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영화중독자 칼슈레이 :.. at 2012/07/08 19:14
Commented by 검투사 at 2012/07/08 18:39
그나마 건진거라면... 주인공이 예비 제수씨 겸 잘 나가는 과 후배에게
"사랑은 메탄올 같은 거야"라고 한 거랄까요.
(타인들마저 막장으로 몰아넣는 자기 동생과 인연 끊으라고 충고할 적에...)
Commented by 검투사 at 2012/07/08 18:41
여기 더해서 국무총리 역으로 장포스 역을 맡으신 그분이 등장했더라면 싶던 것이... ㄲㄲㄲㄲ

"야, 너희 제약회사 놈들 거기서 꼼짝말고 있어! 내가 국방부 장관이랑 전차를 몰고가서 네놈들 시커먼 뱃속을 다 날려버리겠어!"
Commented by 칼슈레이 at 2012/07/08 19:20
"수작이라고 평하기엔 다소 미묘하지만, 충분히 재미있게 보고, 영화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주는, 여름에 걸맞는 시원한 영화라는 것."
오오 공감가는 평입니다 ㅎㅎ 현재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을 보노라니 일단 18일까지의 흥행도 청신호인듯해요 ㅎㅎ 그때까지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빼고는 딱히 경쟁작이 없으니... 물론 19일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등장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죠 ^^;;;
Commented by 옥탑방연구소장 at 2012/07/09 00:52
배트맨에서 와장창 무너지겠지요...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만든 재난영화는 이 정도면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됩니다 ^^ 영화관에서 감상해도 돈값은 하는 그런영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